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국절 논란 (문단 편집) ==== 1948년 8월 15일 건국론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2.ruliweb.com/158ab032de845c1cc.jpg|width=100%]]}}}|| ||<:>{{{-1 1948년 8월 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auc25.com/2752408.jpg|width=100%]]}}}|| ||<:>{{{-1 1958년 이승만 정부 시절 발행한 정부수립 10주년 기념우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ile.agora.media.daum.net/pcp_download.php?fhandle=SGlXREBmaWxlLmFnb3JhLm1lZGlhLmRhdW0ubmV0Oi9EMDAzLzAvNTcuanBn&filename=1963-08-15.jpg|width=100%]]}}}|| ||<:>{{{-1 1963년 박정희 정부 시절 발행한 정부수립 15주년 기념 스탬프를 찍은 관제엽서.}}} ||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현재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8.15 건국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의에 초점을 둔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5월 10일]] 전 국민의 95% 이상이 참여한 총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수립되었으며, 1948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받음으로써 근대 국제 정치 체제에서 처음 주권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919년 건국론과는 달리 8.15 건국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현 [[대한민국]]의 관계를 '정신사적 연속성'이 있는 관계로 국한한다. 임시정부는 민의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었으며, 국가의 3요소를 보유하지 않았음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거이다.[* 이와 별개로,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삼는다면, 동북공정 등 역사왜곡을 일삼는 중국에게 대한민국이 중국의 속국에서 출발했다는 근거를 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사상적, 정신적 맥을 이어 유형의 국가로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5/2017082500065.html|대한민국, 臨政이 뿌리지만 主權 인정은 1948년]]][* 다만 [[몰타기사단]]처럼 과거에는 영토가 있었으나 현재는 영토가 없고, 그럼에도 국가로써의 지위를 유지하여 대다수 국가에서 효력을 인정받는 여권발행, 외교관계 수립, UN에 옵서버 자격으로의 참여 등 국가로써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례도 있는 점을 보아 '''국가의 3요소'''는 사실상 이론적인 모범일 뿐이지, 반드시 '''3요소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815 광복과 동시에 유력인사가 중심이 되어 건국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는 것은, 당시 한반도 내부에서조차 임시정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곧바로 무너졌지만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어쨌든 선포라도 하고서야 건국준비위원회는 해산하였다.] 이 견해에 따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에 불과하다. [[1941년]] 임시정부가 반포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임시정부가 건국을 위한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는 사료로 8.15 건국론자들에게 인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부터 광복까지의 시기는 건국 과정이 아닌 독립운동 과정에 속한다. 실제로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정부는 1948년을 건국의 기점으로 보았는데, 8.15 건국론자들은 [[1949년]] 치러진 '독립 1주년 기념식', [[1958년]] 거행된 건국 10주년 기념 행사,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개최된 건국 50주년 기념 사업을 근거로 1948년 8월 15일 건국론이 지난 반세기 동안 보편적인 인식이었음을 주장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4/2017082400096.html|이승만도 '대한민국 30년' 연호 써" "臨政, 환국 직전 '건국' 다짐]]]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법통 논란#s-5|임시정부 법통 회의론]] 문단을 참조하면 좋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